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 게바라 (문단 편집) === 쿠바를 떠나다 === 카스트로는 결국 친소련정책을 취하여 자국 내에 [[소련]]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허용하고 군사, 경제원조를 얻어냈으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계기로 게바라는 소련의 진의에 대해 회의감을 품게 되었고 이는 소련의 점수 따기에 몰두하던 카스트로와 갈등하며 그와의 사이에 균열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특히 1965년 1월, [[알제리]]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소련을 향해 “어떤 사회주의 국가(소련)는 제국주의 국가처럼 착취한다”라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고, 이에 격노한 새 집권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이 그가 공직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쿠바에 대한 모든 경제 원조를 중단하겠다는 엄포를 놓게 되자 카스트로의 지시로 모든 공직에서도 사임하게 된다. 경제정책 실패에 이어 터진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혁명 정권 내에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었다. 결국 그 해 5월, 가족과 카스트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기고 소수의 지지자들과 함께 쿠바를 등지게 된다. [[파일:external/pds24.egloos.com/f0043889_4fc4b9aeadc11.jpg|width=300]] ^^독서를 하고 있는 체 게바라^^ >'''Hasta la victoria siempre'''[br]'''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체가 [[쿠바]]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또다른 혁명을 위해 [[볼리비아]]로 떠나며 남긴 말.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의 혁명광장에 체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함께 새겨져 있다.] 체 게바라와 소련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원인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1. 체 게바라는 [[마오쩌둥]]의 [[마오이즘|혁명전략]]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제정 러시아]]가 농업 국가라 해도 그 안에는 공장과 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나라에서 공장의 노동자들을 통한 사회주의 혁명 전술을 적용하기엔 매우 어려웠다. 체 게바라가 활동할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공장 노동자들은 그 수가 정말 한 줌에 불과했다. 더욱이 극단적인 빈곤층과 빈농의 수가 너무 많아 공장 노동자들의 위치가 절대적으로는 빈곤층이나 '''상대적으로는 중류층~중하류층에 속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소련식 사회주의 혁명 모델은 쿠바 상황에 적합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에게 있어 소련식 사회주의 혁명 모델은 맞지 않았다. 오히려 쿠바를 비롯한 제3세계 지역에서는 마오쩌둥식 [[마오이즘|혁명 모델]]이 적합했다. 2. 소련의 사회주의 국제분업 계획에서 쿠바는 당연히 농산물 생산, 특히 [[사탕수수]] 보급 기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탕수수 생산에만 의존하는 경제는 결국 경제적 예속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고, 단일작물 경작에 의존하는 경제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쿠바 혁명정부의 지도부 모두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더욱이 사회주의 혁명 완수를 위해서는 반드시 산업화(공업화)를 달성해야만 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발달 후 공산사회가 등장할 것이다'라고만 말했고,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본주의 발달 후 노동자들이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있는 것 다 쥐어짜서 공업에 투입해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마오쩌둥조차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대약진운동'이라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병크를 터트린다. 이렇게 공산주의 국가들이 공업화에 목숨을 건 이유는 이론상 공산사회는 산업[[자본주의]] 사회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바 혁명정부의 태도에 확신이 없었던 소련[* [[라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혁명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사회주의자였으나, 피델 카스트로의 정치 성향은 애매했다. 그래서 쿠바 혁명군은 공산주의 혁명군보다 반 바티스타 연합군에 가까웠다. 실제로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지지자 중에는 극우부터 극좌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초기 혁명 정부 주요 인사가 타국으로 망명하는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했다. 미국은 바티스타 정권에 반대하고 사탕수수 농장 및 각종 산업시설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카스트로에 대해 섣불리 공산주의자라고 규정내렸지만, 쿠바의 상황에서 누가 혁명을 일으키든 - 심지어 우파가 혁명을 일으켰더라도 국유화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던 것이다.]은 쿠바 혁명정부가 만족할만한 지원을 해주지도 않았고, 지원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빠른 산업화를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꿈꾸던 쿠바에게 사탕수수 생산에 의존하는 경제의 유지를 강요하다시피 제안하는 소련은 새로운 경제적 종속 관계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사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체 게바라가 보는 시선대로 이뤄졌다. 미사일 위기가 끝나고 소련은 쿠바로부터 사탕수수, '''시가''', 노동자 등을 수입했기 때문이었다. 저걸로 쿠바는 그나마 소련 붕괴 직전까지 먹고 살 수 있었으나 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의 수교 재개까지 쿠바는 경제 위기를 겪어야 했다.]|| 나중에 그가 향한 곳은 독립국 탄생이 한창이던 [[아프리카]]였고 그 곳에서 [[콩고 내전]]이 한창인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스페인어]]와 [[가톨릭]]으로 공통점이 많은 남미와는 달리 생소한 환경의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에서 공식으로 스페인어 쓰는 나라는 [[적도기니]] 단 한 국가이다. 스페인에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모로코]]에서도 어느정도는 쓰이긴 하지만 스페인어 사용국으로 쳐주지는 않는다.] 그가 생각한 세상이 아니었다. 자칭 공산주의자들은 약탈밖에는 관심이 없는 [[오합지졸]]들뿐이었다. 콩고 반란군은 술집, 매춘굴에 드나들면서 [[성병]]에 걸리기 일쑤였고 다와(Dawa)라는 미신을 믿어서 '''마법의 약'''을 마시면 총알을 맞아도 괜찮다고 여겼다. 무기에 대해 부주의해서 권총으로 장난치다가 자기 허벅지를 날려먹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과 소련 간의 갈등은 이곳에서도 그의 발목을 잡아 친소 국가인 쿠바 출신의 그를 중국의 지원을 받는 콩고 공산세력은 다짜고짜 적대시했다. 변장을 하고 콩고에 들어갔던 체가 콩고의 국회의원 고드프루아 샤말레조에게 정체를 밝히자 국회의원은 '이 사실이 절대 알려져서는 안됩니다. 절대로요! 국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겁니다.'며 당황해했다. 그나마 체가 믿고 존경하던 콩고의 지도자, 로랑 마투디디가 체의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그는 바람이 심한 날 탕가니카 호를 건너다가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마투디디의 부하 둘이 그를 구하려다 실패하자 그들은 '''마법의 힘'''이 그들을 막고 있다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마투디디를 내버려두고 육지로 달아났다. 마투디디의 부하들은 외국인이라면서 체의 명령을 듣지 않으려 했고 자신들이 트럭이 아니라면서 무거운 군장을 메려하지 않았고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어찌어찌 쿠바군 40명이 콩고인과 르완다 투치족 160명과 함께 6월 29일 반데라 요새를 공격했지만 반군들은 대부분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쿠바군 하나가 전투 중 일기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쿠바가 콩고 반군을 지원한다는 것을 CIA가 알게 되었다. 체는 '이런 병력으로 승리란 불가능하다'며 좌절했지만 계속 쿠바 게릴라 부대를 모았고 콩고 반군에게 '너희들 같은 남자와 싸우느니 여자들을 데리고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다그치며 수습하려 했다.[* 정작 이 말을 들은 콩고 반군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야말로 리얼 당나라 군대다.] 그러나 10월, 정부군과 용병대장 마이크 호어의 연합군이 포함, 폭격기,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포위 공격하자 쿠바군과 반군들은 탕가니카 호로 패주했다. 11월 20일 체는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일부 부하들을 내버려두고 배를 타고 퇴각했다. 탄자니아로 도망친 체는 최측근 전우 셋에게 이렇게 물었다. "계속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측근들은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며 물었고 체는 "어디든지"라 답했다. 측근들과 부하들 모두 거부하고 소련 항공기 편으로 모스크바를 거쳐 쿠바로 돌아가고 체만 혼자 주 탄자니아 쿠바 대사관에 숨어 지냈다. 11월 25일 콩고군 참모총장이었던 [[모부투 세세 세코]]가 [[쿠데타]]로 [[조제프 카사부부]] 대통령을 몰아내고 철권통치 시대를 열며 콩고 혁명은 끝이 났다. 연이은 좌절에 피폐해진 그는 일단 남미혁명이라도 완수하겠다고 생각, 1966년 11월 변장한 채 [[볼리비아]]로 입국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